[스크랩] 역사이야기 - 양직공도와 왕회도
양직공도, 아래는 왕회도
*양직공도(梁職貢圖)
양직공도는 양나라의 세자이자 화가였던 소역(蕭繹)이 당시 동북아 최강국인 양나라에 조공하러 왔던 각국 사신을 그린 그림으로, 현재 원본은 사라지고 모사본만 세 종류가 남아있다. 현재 남아 있는 그림은 1077년 북송 때 모사한 것이다. 당초에는 25개국 사신이 그려졌으나 현재12개국의 그림만 남아있다.
양직공도 속의 백제 사신은 무령왕 때 파견된 사신으로 추정된다. 무령왕은 양나라에 두 차례 사신을 파견한 바 있으며, 양나라 왕실 무덤인 아치형 전축분을 본 따기도 했으며, 실제로 무령왕릉에서는“梁官瓦爲師矣(양나라 관청 벽돌을 모범으로 삼았다)”라는 글자를 새긴 벽돌이 발견되었고, 양나라 왕실 무덤에서만 발견되는 유물도 다량 출토되어 양나라와 백제의 긴밀한 관계를 입증하고 있다.
양직공도 속 백제 사신은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다음에 등장한다. 남아있는12개국 사신 중 세 번째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12개국 사신은 백제와 일본을 제외하면 모두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주변 국가들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페르시아는 지금과는 달리 과거 실크로드 문명을 꽃피운 찬란한 고대 강국이었고, 동아시아 최강국 양나라는 이들 나라와 활발히 교류했었다. 백제 역시 양나라를 통해 페르시아 등과 교류하면서 최첨단 물품을 백제로 유입하였는데 당시 동아시아에서 백제가 일본과 신라보다 위상이 높았음을 양직공도가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양직공도 속 왜국 사신은 천으로 대충 감싼 남루한 옷차림에 맨발을 하고 있어 세련되고 품격 있는 백제사신과는 너무 차이가 난다. 또 왜국 사신은 백제 사신 뒤에 그려져 있다. 신라와 고구려 사신 역시 백제 사신 뒤에 보인다. 특히 백제사신은 그림 맨 앞의 양나라 황제 바로 뒤 페르시아 사신 다음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당시 백제가 페르시아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양나라의 핵심 교역국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백제국사'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과 여기에 대한 서술은 6세기 초 웅진시대의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여기에는 "마한에서 시작된 나라이며, 중국의 요서지방을 차지해 다스렸다. 고구려와 말씨 및 옷차림이 비슷하며, 백제 무령왕은 고구려를 크게 격파했다는 사실을 알려온 적이 있다" 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고 담로 등 백제 관직명이 보이기도 한다. 또한 백제가 다스리는 탁국, 다라 등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출처] 양직공도 :백제|작성자 개똥이
*'왕회도'(王會圖)는 중국 당나라 때 이전왕조이던 양나라의 양직공도를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으로 고구려,백제,신라 등 여러 나라의 사신이 그려져 있다. 왕회도는 황제가 각국의 사신들에게 조공을 받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구당서(舊唐書)〉권86‘남만열전(南蠻列傳)’에 “정관(貞觀) 3년(629)에 원심(元深)이 들어와 조회하였다. 중서시랑(中書侍郞) 안사고(顔師古)가 아뢰기를‘옛날 주무왕(周武王) 때에 천하가 태평하여 먼 나라들이 찾아오자 사관(史官)이 그 일을 기록하여‘왕회편(王會篇)’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만국이 찾아와 조회하였는데, 그들의 의상이 실로 그릴 만하니, 지금 왕회도를 편찬하였으면 합니다’라고 하니, 윤허하였다”라고 하여 왕회도가 이때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화가는 초기 당나라를 대표하는 인물화가 염립본(閻立本, 600년경~673)이 그렸는데 관료이자 화가인 염립본은‘역대제왕도권(歷代帝王圖卷)’‘직공도(職貢圖)’등을 남긴 대가다.